2005/06/19

엘렉트라 (Elektra)


엘렉트라 (Elektra)
출연: 서경화(엘렉트라), 지미 리(클리템네스트라), 최솔희(크리소테미스), 이종무(오레스테스), 장우진(아이기스토스), 백성진(메신저), 이원희(코러스)
원작: Hugo von Hofmannsthal
연출: 박찬진
무대감독, 조연출: 정 미
기획,홍보,진행: 양지원
음악: 오래미
무대: 박미란
의상: 서현숙
아크로바틱: 김태욱
조명: 정근채
기획: 서울연극앙상블
장소: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200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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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예술에 전당에서 본 <아가멤논>에 이어지는 내용의 그리스 비극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아르고스 왕국으로 돌아온 아가멤논왕이 아내인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엘렉트라>는 아가멤논왕의 딸 엘렉트라가 왕의 복수를 행하는 내용이다. 물론 다음에는 헤라클레스의 모험에 비견할만한 오레스테스의 모험담이 이어지지만 일단 <엘렉트라>는 엘렉트라의 복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엘렉트라>는 2년 전 대학로극장에서도 한번 접한 적이 있다. 이때는 아가멤논왕의 귀국부터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아가멤논>와 <엘렉트라>를 함께 했다고나 할까... 2003년 <엘렉트라>에서의 키산드라의 분노에 찬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무튼 그리스 비극은 공연 시마다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 비극적인 내용만큼이나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전의 <아가멤논>이 그러했고 이번 <엘렉트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신화의 이야기에서 신을 배제하려는 시도이다. 그 신의 자리를 '꿈'이 차지한다.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신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악몽을 두려워한다. 엘렉트라는 살육의 밤을 잊지 못하고 매일 밤 꿈속에서 복수의 다짐을 되새긴다. 복수가 실패하거나 성공하기 전까지는 이들은 편히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들은 핏빛 가위에 눌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복수를 두려워하며. 복수를 위해서. 악몽에서 벗어나 꿈이 없는 편안한 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레스테스가 죽어야한다.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가가 죽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오레스테스의 손에 복수는 이루어진다.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더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엘렉트라 역시 고대하던 복수를 마치고 소진해 쓰러진다. 이제 영원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악몽이 완전히 사라졌는지는 불확실하다. 훗날 헴릿은 말하지 않았던가. 영원히 계속되는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 두렵노라고..

엘렉트라, 크리소테미스, 클리템네스트라. 세 여인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엘렉트라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오직 복수에만 자신을 헌신하며 어머니인 클리템네스트라를 증오한다.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꾸는 크리소테미스는 언니인 엘렉트라를 이해하지만 약자로서 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복수의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고 두려워한다. 이 둘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두가지 가치와 인격을 대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평범한 삶을 원하는 본능과 복수를 위한 자기 희생.. 결국 엘렉트라는 복수를 감행하게 되고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인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달성하는 그 순간 그녀는 어머니의 주검 옆에 쓰러져 죽는다. 자신의 딸을 죽인데 앙심을 품고 왕을 죽이는 여왕 클리템네스트라는 자식들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코러스의 이원희님는 얼마전 <안녕, 모스크바>에서 발렌찌나 역으로 본 적이 있다. 강제수용소의 관리인으로 수용된 사람을 감시하고 주시하던 그녀는 이번에는 트로이에서 끌려온 여사제가 되어 아트레우스 왕가의 비극을 지켜보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이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엘렉트라가 흰 통을 들고 나와 그 통 속의 피를 자신의 몸에 끼얹는 첫 장면이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 장면은 극의 마지막에 클리템네스트라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오레스테스에게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는 장면보다 훨씬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Reference
아가멤논
안녕, 모스크바

셜리 발렌타인 (Shirley Valentine)


셜리 발렌타인 (Shirley Valentine)
출연: 손 숙
원작: 윌리 러셀
번역: 성수정
연출: 글렌 월포드
미술: 클레어 리스, 조명: 김종호
의상: 이수동, 사진: 조세현
장소: 소극장 산울림

200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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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야 간단히 메모를 남긴다. 연극의 상세한 내용은 이미 감자튀김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기억속에서 흩어져버렸다.

같이 본 친구는 근래에 본 연극 중 가장 괜찮았다고 평한다. 산울림 극장에서 본 다른 작품들도 좋았다. <고도를 기다리며>(2002)는 산울림의 대표작이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2003)에서는 박정자님의 <에쿠우스>에서와는 다른 성격의 연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손숙님의 친근감있는 연기를 접할 수 있다.

<셜리 발렌타인>는 모노드라마이다. 연기자라고는 손숙 혼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은 벽이나 바위가 되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한 인간의 자아를 찾는 일탈과 모험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여자'의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인 나의 이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또 한 사람의 여자이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는 단지 남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내 주위에는 언제나 여자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가장 가까운 곳에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탈.. 비슷한 소제를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도 다루고 있다. 후자는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회상하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는 서로 닮았다. 모든 것을 남겨두고 여행을 떠나기에는 걱정거리가 너무도 많은 당신. 오랜 시간의 숙고 끝에야 비로소 이제는 여행을 떠나도 괜찮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모습. 하지만 셜리 발렌타인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리스의 해변에 남는다.

바람난 여자로 봐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자신을 찾은 한 사람의 여자로 봐야 할지.. 그녀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의 머리 속에 그리는 생각과 실제 보여주는 행동 사이의 이중적인 모습을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다른 이들, 특히 여자들의 생각이 궁금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일단은 혼자 고민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