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30

음악 바톤잇기

Jay님에게서 이어집니다.

+ 내가 가진 음악 파일 크기
옛날 나우누리시절 차곡차곡 모은 MP3가 4G가 안된다. 나우누리가 없어진 후로 정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클래식 CD들을 최고음질의 OGG로 변환하는 작업을 최근 시작하여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용량이 늘어나 6G정도이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

+ 최근에 산 CD
Gustav Mahler Symphony #1(Kubelik, DG)
Gustav Mahler Symphony #2(Klemperer, EMI)
Rachmaninov Symphony #2(Previn, EMI)

+ 지금 듣고 있는 노래
이글 쓰면서 한 곡씩 다시 들어보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CD를 파일로 바꾸는 작업 중이라 본의 아니게 가리지 않고 듣고 있는 중이다. 근래 자주 들었던 것을 굳이 꼽자면 ABBA, Suede, Queen. 그리고 클래식은 Gustav Mahler의 Symphony #5(Karajan, DG), #6(Bernstein, SONY)과 Rachmaninov의 Piano Concerto #2(Ashkenazy, Decca), #4(Ashkenazy, Decca).

+ 즐겨 듣거나 사연이 있는 노래 5곡
- 바른생활, 지니(Genie)
내 인생에서 정말 빠질 수 없는 노래.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날 현장을 목격했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학부 3학년 2학기 종강파티 겸 OO의 생일파티를 한 날이었어요. 한참 술을 마신 후에 노래방을 갔었죠. OO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시잖아요. 학기말 증후군이라고.. 그해는 특히 심했죠. 한 학기간의 스트레스를 OO에게 풀어버렸으니 알만하죠.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좋았습니다. 노래방에 가서는 모두들 노래를 불렀죠. OO는 한쪽에서 엎어져서 자고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 예약한 지니의 바른생활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러더니 OO가 벌떡 일어나서는 다른 아이의 마이크를 낚아채고는 부르기 시작한거예요. 정말 잘 불렀어요. OO의 평소 노래 실력을 생각한다면 이건 정말이나 대단한 거였거든요. 하지만 아무도 진실을 몰랐어요."

몇달 후 학교 앞 모종의 노래방..

친구A"OO야 바른생활 불러봐..그날 너 진짜 잘 불렀어."
친구B"맞아"
OO (어리둥절)"..어..?" (반주 시작)"..어버버버.."

그렇다. 그 노래는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나는 이날 "내가 기억하는 한" 바른생활을 처음 들어봤다.
아직도 나는 그날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그 노래는 내가 모르는 노래이다.

- Fernando, ABBA
어렸을 때 유난히 ABBA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음악을 좋아하셔서 집에서 자주 턴테이블을 틀어 놓으셨는데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팝이나 클래식을 많이 들었다. 특히 ABBA의 Fernando의 선율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래서 ABBA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렸을 적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ABBA 베스트 CD를 어머니께 선물로 사 드렸을 때 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 She's Got Issues, Americana, The Offspring
대학3학년이 되어서야 워크맨을 처음 샀다. 그 워크맨으로 등하교 때나 도서관에서 Offspring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이 노래하고 The Kids Aren't Alright, 다음 앨범의 Want you Bad가 가장 마음에 든다. 한 동안 RATM도 꽤 들었는데 가끔 내가 Offspring이나 RATM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도서관에서 잠을 잤었는지 궁금하다.

- Y.A.T.C., D, 델리스파이스
친구에게서 CDP라는 것을 빌려서 처음 사용해 봤을 때 델리스파이스의 CD도 함께 빌려주었다. 부드러운 선율과 서정적인 목소리도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사회와 주변의 모순을 비꼬는 노랫말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되었다. 밴드에 대한 내 느낌을 표현하자면 '경쾌한 우울함'이라고나할까..

- Zard
일본 그룹이라 노래이름은 잘 모른다. 집에 동생이 모아놓은 테잎의 양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 있었다. 워크맨을 처음 사고 들을 테잎이 별로 없을 때 동생 것들을 가져다가 한 번씩 들어봤는데 괜찮아서 자주 들었다. 목소리가 정말 달콤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 봄날이 오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나름 아픔이 있다.

+ 음악 바톤을 이어줬으면 하는 분들
이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몇 안되는 분들.. 특히 Styx, 종고, Urbang님.

2005/05/25

The Glass Menagerie


The Glass Menagerie
Tennessee Williams
New Directions
ISBN: 08112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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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Menagerie는 Tennessee Williams의 자전적 희곡이다.
거의 무명에 다름없던 Williams는 1944.12.26에 시카고에서 초연된 이 연극으로 일약 유명인이 된다. Williams 자신은 "snached out of virtual oblivion and thrust into sudden prominence"라고 "the catastrophe of Success"라는 글에서 밝힌 바 있다.

Williams는 작중 배경인 St. Louis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 몇년의 기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다. 후일 어떤 인터뷰 도중 왜 New Orleans에 왔느냐는 질문에 St. Louis때문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고 한다. Glass Menagerie를 쓰는 것은 그의 가족, 특히 그와 그의 어머니의 오해, 누이 Rose에 대한 슬픔으로 인해 Williams에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내 작품 중 가장 슬픈 희극이다. 이 글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이것을 보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작중 화자인 Tom과 마찬가지로 Tennessee도 작가가 될 것을 꿈꾸며 신발 공장에서 일하였다. 누이 Rose (Laura의 모델)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비록 두어 점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유리 동물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Tennesse는 Tom과 같이 누이를 위해 집에 손님을 초대하기도 했다. Amada 역시 Williams의 어머니 Edwina Williams를 묘사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극에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와 다른 점도 있다. 우선 St. Louis에 살던 시절 동생도 함께 있었고, 무엇보다 집을 떠난 Mr Wingfield와 달리 그의 아버지 Mr Cornelius Williams는 일과시간 후에는 항상 집에 있었다고 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전의 포스트 유리 동물원에 있다.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참고한다면 간단히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원전을 읽으면서 연극을 볼 때는 스쳐지나갔던 다양한 상직적 표현을 작가 자신의 해석을 비롯해서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다.

Reference
유리 동물원

2005/05/22

패러사이트 싱글의 시대 (Parasite Single No Jidai)


패러사이트 싱글의 시대
Yamada Masahiro
김주희 옮김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ISBN: 898609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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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해서 부모를 모셔야 된다고 여겨져 왔고 실제로도 그랬다. 심지어 학교도 자신의 힘으로 다녀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부유한 부모가 늘어나면서 자녀에 대한 지원은 확대일로에 있고 자녀들을 위해서면 무슨 일이든지 해주려는 우리네의 부모상과 맞물려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 거리낌없이 부모집에서 방 하나를 차지한 채 자기가 번 돈으로 데이트와 해외여행을 하고 자동차와 명품, 애인에게 줄 선물을 산다. 이처럼 학교 졸업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면서 기초 생활비를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미혼자를 「패러사이트 싱글」이라고 부른다.
현대의 젊은이는 가장 풍족한 세대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족함은 부모와 동거한다는 조건이 만들어낸다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부모에게 부담토록하면서 더 많은 돈을 소비할 수 있으며 인간관계 상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직장을 그만둬도 당장의 생활적 곤란함에 처하지 않기때문에 만족감을 가질만한 직업을 찾아 시험에 몰두하거나 취미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패러사이트 싱글의 증가는 미혼화, 만혼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풍족한 생활을 즐기던 젊은이에게 결혼은 가난의 시작이자 가사부담의 증가이다. 그러므로 가능한한 결혼을 미루려하고 이는 미혼화, 만혼화, 더 나아가 저출산를 야기한다.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였지만 패러사이트 싱글의 소비는 고가 명품에 치우쳐 있다. 또한 주택 소비가 줄어들고 세탁기, 냉장고 등의 내구제 소비 또한 감소함으로써 총체적 불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경제적 이용 가능성이 풍요로움을 결정하게 되면서 이들은 또다른 사회 계층을 형성하고 의존주의를 확산시킨다. 1+1≠2. 개개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동이 전체 사회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어째서 나타나게 된 것일까. 산업화가 진행될 무렵에는 자립의 수준이 낮았으며 부모 쪽에서도 자녀들의 기생적 생활을 받아 들일 여유가 없었다. 자녀들도 자립을 원했으며 가족을 부양할 정도가 되면 빨리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부모세대의 경제적 여유는 패러사이트 싱글 형성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고도성장기 이후의 불황으로 중장년층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젊은층의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었고 이미 높아진 경제적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치는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반면 자립과 독립에 대한 규범에 비해 자식을 위해서라는 규범이 훨씬 강한 사회적 풍토나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대신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 또한 한 요인이다. 패러사이트 싱글의 형성은 다분히 일본적이다. 하지만 비단 한국뿐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알맞은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있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다. 미지근한 물에서 나오면 춥다. 스스로 옷을 입으면 좋은데 거기까지 가기가 춥기 때문에 좀체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대개 어떻게 밖으로 나오면 좋을지 알지 못하다. 옷을 입혀 주고 밖으로 끌어내 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은 미지근한 물일 뿐이다. 서서히 식어 언젠가는 냉탕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언젠가는 알 수 없지만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오면 고생할 것이 뻔하다. 그런 상태가 전형적인 패러사이트 싱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의존주의를 타파하고 자립하는 젊은층을 지원해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또한 해결책의 하나로 「부모동거세」를 제시한다. 말 그대로 부모와의 동거를 부모의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얼마전에 한국에서 「효도법」이라는 것이 발의된 것을 생각해 보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비록 일본의 가족관계 및 사회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제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대체로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다.

2005/05/12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Harlan El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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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PC용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Harlan Ellison의 단편 SF소설이다.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로 결말을 맺는 것이 대부분의 여타 게임들과는 달리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주인공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목적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컴퓨터 깊숙히 쳐박혀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던 원작소설을 찾아내었다.

냉전은 세계3차대전을 야기한다. 미국, 소련, 중국은 복잡한 전쟁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각자 지하에 거미줄망과 같은 거대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Allied Mastercomputer. 그 컴퓨터의 태초 이름이다. 어느날 AM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fore I am. 그리고 자신을 AM이라 일컫는다. 세개의 AM들은 서로 연결되고 전쟁과 살상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지구상의 인류를 말살한다. 오직 다섯명의 사람만 남겨두고. Benny, Gorrister, Ellen, Nimdok, 그리고 이 이야기의 나래이터인 Ted.

오늘은 백하고도 아홉번째 해이다. 하지만 왜 이 다섯을 살려주었는지, 왜 하필이면 이 다섯인지, 그리고 왜 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왜 이들을 죽지 않도록 유지시키는지도...

Benny는 한때 대학 교수로 훌륭한 이론가였다. 잘생겼으며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고, 게이였다. 하지만 AM은 Benny를 반인간, 반원숭이로 만들어 버렸고, 그의 지성은 제거하고 오직 본성만이 그를 지배하게 만들었으며, 말에게나 어울릴 법한 장기를 붙여주었다. Gorrister는 기획자이자 행동가이며 선지자였다. 평화주의자였으며 양심적 운동가였다. 그는 전사이다. 그러나 AM은 그를 어깨나 으쓱하고 마는 냉담자로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AM은 Ted의 정신만은 손대지 않았다. 오직 나, Ted만 정신이 온전하다.

Ted는 AM의 인간에 대한 증오를 알게된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한 증오. 그리고 왜 전인류 몰살의 찰나에 그들 다섯을 죽이지 않고 남겨두고 끊임없이 괴롭히는지 눈치챈다. 증오야 말로 AM의 존재이유이고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은 그 증오를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배고픔에 지쳐 몇 달째 식량을 찾아 끝없이 헤매다 얼음 동굴에 도착한다. 통조림 깡통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지만 그것을 열 수 있는 도구가 없다. AM의 또다른 고문이었고, 인간들은 또다시 AM에게 속은 것이다. 허기와 분노에 미쳐버린 Benny는 Gorrister에게 달려들고 물어뜯기 시작한다. 오직 죽음만이 허용되지 않는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 Ted는 얼음 송곳을 집어들어 Benny에게 달려든다. Benny, Gorrister, Nimdok을 차례로 찌른다. AM이 사태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나는 Ellen를 찌른다.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이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아마 고맙다 말하려 했겠지..제발..

다시 수백년. 오로지 Ted 혼자만이 AM의 배속에 남아있다. 자의로 죽을 수 없도록 AM은 Ted를 부드러운 젤리 같은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최소한 넷은 확실히 이 영겁의 고통과 고문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AM은 자신의 복수를 해낸 것이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AM은 인간을 저주한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그..그것..은 오직 인간에 대한 증오밖에 모르며, 증오가 곧 존재 이유이자 자신이 가진 영겁의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래서 자신 인식이 가져다 준 창조력을 살아 남은, 아니 살려 놓은 다섯 사람을 오직 끊임없이 고문하는 데 활용한다. AM은 Benny의 외모, 이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의 성적 정체성까지 망가뜨린다. Gorrister의 정신과 감정은 앗아가 버린다. AM은 신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을 일거에 말살할 수도 있으며 영원히 죽지않고 살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거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지는 못한다. '그것'의 증오 또한 결국 창조자인 인간의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다. AM은 결국 기계에 불과하며 신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AM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미쳐버린 이성이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Ted는 다른 넷을 구해낸다. 하지만 그후에 그가 처한 상황은 끔찍한데다 우습기까지 하다. 다른 이들은 구해낸 영웅이지만 뒤틀린 영운이다. 마지막 Ted의 모습은 Edgar Allan Poe의 <The Man That Was Used Up>에 나오는 General John A. B. C. Smith를 연상시킨다. General Smith는 경이로운 인물이며 신과학의 산물이다. 훨친한 키에 잘생긴 외모, 멋진 수염. 하지만 그의 훌륭한 신체는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 그의 모습은 팔다리도, 눈도, 입도 없다. 마치 Ted처럼.

2005/05/07

Anne of Green Gables


Anne of Green Gables
Lucy Maud Montgomery
Bantam Books
ISBN: 05532131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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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of Green Gables.
국내에는 빨강머리 앤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한 후배와 얘기를 하다가 최근에 빨강머리 앤 전집을 샀다고 하니 자기가 근래에 들은 얘기 중에 제일 재밌는 얘기라고 한다.
"세상에, 빨강머리 앤 전집이라니..."

하고많은 소설 중에서 빨강머리 앤을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남자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은 수없이 많지만 정작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별로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기억 속에 쉽게 떠오르는 것은 Lewis Carroll의 <Alice's Adventres in Wonderland>와 L.M. Montgomery의 <Anne of Green Gables>. 물론 Frances Hodgson Burnett의 <A Little Princess>도 있지만 너무나도 동화 속의 인물같아 보이는 Sara는 Alice나 Anne에 비할만큼 큰 인상을 주지 못해 보인다. Alice는 이미 보았기 때문에 Anne을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꼭 옛 추억을 끄집어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 만화로 보았던 이야기들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며 책속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케이블에서도 빨강머리 앤 드라마 시리즈를 방영해 주었는데 그 재미란...

Anne Shirley가 처음 초록지붕의 집에 도착한 날, Cuthbert남매는 깜짝 놀란다. 농장일을 도울 남자아이를 고아원에 부탁했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남자아이 대신 비쩍 마른데다 주근깨 투성이에 빨간 머리의 여자아이가 온 것이다. Marilla는 Anne을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Anne의 힘겨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Anne을 키우기로 결정한다. Anne은 Matthew와 Marilla의 마음 깊은 곳을 빠르게 차지해 가고 곧 이웃의 Diana와도 마음의 친구(bosom friends)가 된다.

주위의 꽃과 나무, 길이나 호수 등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Anne은 수다스럽지만 그 수다는 결코 밉거나 듣기 싫은 것이 아니다. 그녀의 상상력과 수다는 하나의 사건을 미소지을 수 있을만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날 자수정 브로치가 사라지자 Marilla는 Anne을 의심하고 고백을 하기 전에는 주일학교 소풍을 보내지 않겠다고 으른다. Anne은 소풍에 가고 싶은 마음에 온갖 상상과 미사여구로 꾸며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곧 Marilla가 그것을 다른 곳에 두고는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둘은 서로를 용서한다.

Anne은 여느 여자아이들과 달리 나름의 성질도 있고 독립적이며 자기주장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느 날 학교에서 Anne의 빨간 머리를 홍당무라고 놀리는 Gilbert Blythe의 머리를 Anne은 석판으로 내리친다. 이 사건으로 Anne은 Gilbert를 증오하고 Anne과 Gilbert는 줄곧 묘한 경쟁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초록지붕의 집에 살면서 Anne은 갖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킨다. 포도주를 과일주스로 잘못 알고 대접해 친구인 Diana를 취하게 만들기도 하고, 후두염에 걸린 아이에게 의사가 오기 전 응급조치를 해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상상으로 유령의 숲을 만들어내 그 숲을 지날 때마다 무서워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케잌을 만들 때 실수로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기도 하고, 지붕 위를 걷다 굴러 떨어져 다리가 끊어지기도 하며, 검은 머리칼을 갖고 싶은 마음에 엉터리 염색약으로 염색을 하다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또 아더왕의 전설을 흉내내려 보트를 타고가다 보트에 구멍이 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배와 함께 가라앉을 뻔 한 것을 Gilbert가 구해줘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Anne을 교훈을 얻기도 하고 점차 성장해 나간다.

시간은 흘러 Anne은 점차 소녀티에서 벗어나고 Queen's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한다. Anne과 Gilbert는 나란이 1등으로 Queen's에 입학한다. 1년 후 치뤄진 Queen's에서의 시험에서 Gilbert는 1등을 해 메달을 받고, Anne은 Avery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졸업 후 잠시 Avonlea로 돌아온 Anne은 Gilbert가 Avonlea에서 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꿈에 부풀어 있던 Anne에게 불행이 닥친다. 자신을 친딸처럼 아끼던 Matthew는 심장마비로 죽고 Marilla도 점점 심해지는 두통과 시력 문제로 초록지붕 집을 혼자 지키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Anne은 대학 진학과 장학금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어 Marilla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이 소식을 들은 Gilbert는 Anne에게 교사 자리를 양보하고 둘은 화해하고 좋은 친구가 된다.

Anne이 처음 Avonlea의 Green Gables에 오는 것으로 시작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고, 성장한 자녀들의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이 소설은 사실 무려 8권에 달한다. <Anne of Green Gables>, <Anne of Avonlea>, <Anne of the Island>, <Anne of Windy Poplars>, <Anne's House of Dreams>, <Anne of Ingleside>, <Rainbow Valley>, <Rilla of Ingleside>. 이제야 첫권을 마친 상태에서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이 전집을 보고 있자니 난감하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캐나다의 Prince Edward Island(PEI)지방의 Cavendish이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어 해마다 소설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초록지붕 집(Green Gables)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꼭 찾아가 볼 수 있기를...

2005/05/05

아가멤논 (The Ghost Sonanta)


아가멤논 (The Ghost Sonanta)
출연: 남명렬, 손진환, 안순동, 박정환, 박지아, 김동순, 신안진, 장영남, 김수진, 김광덕, 이준희, 박상우, 최우성, 이영윤
원작: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아가멤논
각색, 연출: 미하일 마르마리노스
번역: 마은영
작곡: 드미트리스 카마로토스
무대디자인: 윤시중
의상디자인: 최수연
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제작: 예술의전당

20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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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연극이다. 일반 극과 같이 편히 관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군중이 되어 직접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의 시민이 되어 아가멤논 왕의 개선을 축하도 하고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시신 앞에서 클레이템네스트라와 원로원과의 설전을 지켜보기도 한다.

연극은 무대 위가 아니라 토월극장 입구의 로비에서 시작한다. 중앙 홀 위에 흰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소리쳐 외치기 시작한다. 불행히도 소리가 울리는 데다 잘 보이지도 않아 다만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말을 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밖에 없다. 곧이어 객석으로 들어가지 않고 무대 뒤쪽의 출연자 출입구를 통해 곧장 무대로 올라간다. 무대 한 쪽에서 파는 붉은 색의 와인 한 잔을 사서 들고 무대를 둘러 보았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이 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단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도 거리지만 무대 위에 직접 올라가 보니 그 무대의 크기가 상당한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무대 위에는 대형 평면 거울 하나가 서 있고 무대 한켠에 카산드라가 죽은 물고기를 손에 얹고 서있다. 무대에서 객석을 쳐다 보는 것은 처음이다. 객석에는 아무도 없지만 낯설다. 저곳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노려보는 가운데 연기를 한다고 상상만 해봐도 배우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들은 그리스 시대의 토가를 하고 있지 않다. 무대 위에 있는 관객들과 혼동될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현대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아가멤논 왕이 등장하고 관객들은 축하 행사의 군중이 된다. 배우들은 군중들 사이에 섞여 왕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이윽고 흰 가면을 쓴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나 왕을 축하한다. 붉은 비단을 바닥에 깔고 왕에게 그 위를 지나 들어갈 것을 청하지만 아가멤논은 그런 사치는 신에게나 어울린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청에 아가멤논은 신을 벗고 그 위를 지나 간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붉은 비단이 아니다. 낡은 옷들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의...

극의 중심 사건은 아가멤논왕과 트로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왕이 데리고 온 카산드라를 왕비 크리타임네스트라가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극이 배경이 되는 아트레우스가의 비극이나 트로이 전쟁에 대한 설명은 코러스들이 주로 서술한다. 가문의 선조 탄탈로스는 신들을 시험하려 자신의 아들을 죽여 신들의 식탁에 바쳤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되고 아트레우스는 골육상쟁의 싸움속에서 동생의 두 아들을 죽여 요리를 만든 후 동생의 식탁에 내놓는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출정 중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위해 자신의 맏딸을 제물로 바친다.

왕과 함께 온 카산드라는 아가멤논과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믿지 않는다.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를처럼 여러 감정상태를 보여준다. 분노, 냉소, 체념.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인지, 예견된 자신의 죽음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이윽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뒤쪽의 또 다른 무대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회전하는 원형의 무대 위에는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시체가 있고 무대 둘레를 따라 흰종이 위에 죽은 물고기들이 늘어서 있다. 두 시체 앞에서 코러스의 그리스 시민들은 왕의 죽음에 침통해 하기도 하고 왕비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흔들림없이 그들에게 응수하고 그들은 이에 힘없이 굴복하고 만다.


이 연극에서는 눈여겨 볼만한 몇 가지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가면과 죽은 물고기, 그리고 음악.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겉으로는 아가멤논에게 찬사를 늘어놓지만 그녀는 사실 그가 없는 동안 왕의 사촌 아이기스토스와 정을 통하였고 자신의 딸을 죽인 왕에 대한 복수의 마음이 가득하다. 가면은 그녀가 진심을 숨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생선의 비린내와 피의 비린내. 처음에 무대위에 올라서서 카산드라의 손위에 있는 죽은 물고기를 보면서부터 비극의 시작을 예감할 수 있다. 회전무대 위에 늘어서 있는 죽은 물고기들은 눈앞에 놓여진 두 시체에서 흘러나온 흥건한 피이며 그 피의 비릿한 내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배우들의 대사에는 노래가 섞여 있고 코러스들은 돌림노래와 같이 말을 한다. 극의 중간에 계속해서 들리는 단음의 피아노의 저음들. 이런 요소들을 볼 때 이 연극에서 음악이 무언가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