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27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 돈키호테로부터
베쓰야쿠 미노루
송선호 옮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ISBN: 897986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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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얼마전 동명 연극의 공연이 있었다.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아쉽게 놓친 이 연극의 원작 희곡을 발견하고 주저없이 계산했다.

황야의 '이동식 간이 숙박업소'에 의사와 간호사, 목사가 찾아온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환자를 만들어 돈을 벌려는 의사와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목사, 그리고 손님보다 먼저 모여드는 장사꾼들을 귀찮아 하는 여관 주인. 여관 주인의 딸의 노래 소리에 이끌려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곳에 전혀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손님들이 등장한다. 늙은 기사 둘과 그들의 두 종. 이 두명의 늙은 기사는 물속에 독을 넣어 간호사를 죽이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은 남겨두지도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음식을 먹어치워 버린다. 이어서 다시 식량을 구해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여관 주인을 독살한 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상한 결투를 벌인다. 또다시 의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사 마저도 죽이고 만다. 늙은 종마저 여관 주인의 딸에게 죽도록 내버려 둔다. 이때 풍차가 돌기 시작한다. 기사는 젊은 종에게 도망치라고 하지만 젊은 종은 이를 거부하고 거인 브리아레오와 싸우겠다며 풍차에 돌진해 죽는다. 사는 일이 지겨운 두 기사는 차리리 여관집 딸에게 죽기를 기다리지만 궁지에 몰린 딸은 결국 자살해 버리고 만다. 이제 두 노기사만 남아 있다. 사는 일에 질려 죽이는 일까지 질린 이 두 기사는 서로를 죽이려는 의지도 없이 누군가가 와서 자신들을 죽여주기를 기다린다. 시간은 겨울로 서서히 흘러가고 두 기사는 지구의 움직임을 가만히 느끼고 있다.

'돈키호테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은 이 희곡은 돈키호테의 기사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지만 사실 돈키호테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 싸우는 편력기사 돈키호테의 모습은 오간데 없다.
종1그것도 편력기사입니다. 그냥 기사와 편력기사의 다른 점은, 그냥 기사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상이 그대로지만, 편력기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세상이 손해를 입습니다. 때문에 편력기사는 언제나 세상을 편력해서 부정을 바로잡고 폐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 로시난테는 벌써 잡아 먹어 버렸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도 기사가 아닌 그의 종 산초판사이다.
종1아니요, 저건 거인 브리아레오입니다. 마법사 프레스톤이 브리아레오와 싸우는 명예를 내게서 빼앗기 위해 풍차로 모습을 바꿔버린 겁니다. 가라고 해 주십시오. 가서 거인 브리아레오와 싸우고 오라고...(창을 든다)

이들은 오로지 죽지 않기 위해 죽이는 일만 반복해서 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의사도 목사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사와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목사의 모습은 성공한 축에 속한다는 그들마저 정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비록 두 기사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심판을 받지만 정의는 아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목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죽음은 그저 반복되는 상황일 뿐인 것이다.
기사2우리들도 특별히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게 아냐.
목사그런데, 왜 죽이는 겁니까?
기사2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니까.

이제 죽이는 것도 지쳐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지만 죽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누군가가 와서 그들을 죽여주기를 지구의 회전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그저 기다릴 뿐이다.
기사2날 죽일 생각이 없군...
기사1없어
기사2왜?
기사1이제 질렸어.
기사2죽이는 게 말인가?
기사1사는 게... 그래서 사는 일에 질리니까 죽이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어.

기사2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어.
기사1어쩔 수 없지.
기사2언제까지지?
기사1저쪽에서 올 때까지지.
기사2뭐가...?
기사1우릴 죽일 상대가 말이야.
기사2올까...?
기사1기다리는 거지...

기사2지구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나?
기사1지구가...?
기사2그래...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이 지구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구.
기사1음...(확인하고)느껴지는군.
기사2지금이, 가을인가...?
기사1그래, 가을이야.
기사2그러면 우린 지금, 천천히 겨울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야.
기사1아아, 겨울 쪽으로 말이지.
기사2느껴지지...?
기사1느껴져...

독으로 오염된 물과 치즈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지 '정말 약간 뭔가를 먹게 해주고, 정말 약간만 마시게 해주면 족하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사의 모습에서 인간 삶의 딜레마를 느낀다.

두 노기사는 가만히 앉아 자신들을 죽이러 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란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일 뿐인가...이 기다림의 모티브는 꼭 Samuel Beckett의 <En attendant Godot(고도를 기다리며)>와 흡사하다. 절망적인 현실에서 작가는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제시하지만 너무나 절망적이다.
기사2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말마라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건 죽기 전에 조금 움직여 보고 싶어하는 거야. 살아 있는 게 아냐. 그냥, 움직이고 있을 뿐이니까...

2005/04/24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출연: 이승연(아만다), 김기민(톰), 조선주(로라), 한창완(짐)
연출: 송윤석
조연출: 최교익
제작감독: 김두영
예술감독: 김성빈
드라마투르그: 현재원
무대: 안치윤
의상: 라키
분장: 전인미, 김선희
주최: 누다연극인모임
제작: 극단 예휘
공연장소: 연우소극장

200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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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은 Tennessee Williams 원작의 희곡이다. Tennessee Williams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작가이기도 하다.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꼭 봐야 하는 연극 중 하나라 생각해 왔기에 친구와 함께 대학로를 찾았다.

배경은 대공황 시대 미국의 한 가정이다. 무대는 극히 간결하다. 실내임을 알릴 수 있을 정도의 약간의 벽과 낡은 의자 몇 개. 그리고 실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유리조각 더미. 소품 또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음향 효과와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에 의존한다.

극이 시작하기 전 아만다는 무대 가운데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불편해 보이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적어도 십 여분 이상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몰락한 아일랜드의 귀족출신이다. 아만다는 귀족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들인 톰과 딸인 로라에게 항상 귀족적인 품위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하층민의 처지에 있지만 항상 사실인지 알 길이 없는 영화로운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있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톰이 행여 술에 빠져 부랑자나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로라가 착실한 청년과 하루빨리 맺어지기를 고대하며 톰에게 건실한 청년을 로라에게 소개할 것을 부탁한다.

연극은 톰의 나래이션로 시작하며 진행된다. 톰은 창고에서 일하며 밤마다 영화를 보러간다고 나가서는 술에 취에 집에 들어온다. 일하는 종종 화장실에 숨어 몰래 시를 쓰는 그에게 친구인 짐은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을 붙인다. 톰은 희망없는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며 언젠가 선원이 되어 대양으로 나갈 것을 계획한다. 어느 날 어머니의 부탁에 따라 저녁 식사에 짐을 초대한다. 누이인 로라를 무척 아끼고 걱정한다.

절름발이인 로라는 지극히 수줍어하며 소극적이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실업학교에서 타자 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고 직장도 없다. 로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언제나 자신이 수집하는 유리 동물들과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남긴 축음기만을 만지작 거리며 살아간다. 집에서 수없이 접시같은 것을 깨뜨는 것은 그녀가 현실의 벽을 넘는 것이 요원함을 보여준다.

짐은 톰과 같이 창고에서 일하는 멋지고 건실한 젊은 청년이다. 그는 연극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연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짐의 등장 이전과 이후. 짐의 등장 이전에는 주로 톰과 아만다의 갈등 관계가 부각된다. 귀족적인 품위를 강요하는 어머니 아만다와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아들 톰. 이들은 비참한 현실의 상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외면한다. 아만다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로라는 자신의 유리 동물원에 갖혀 있으며 톰은 시를 쓰며 자유로운 미래를 꿈꾼다.

짐의 등장 이후는 짐과 로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짐에게 로라는 자신의 유리 동물 중 유니콘을 가장 아낀다고 말한다. 유니콘은 순수함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현실에는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로라 또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실수로 유니콘의 뿔을 부러뜨리지만 로라는 짐을 용서한다. 짐과의 대화를 통해, 짐과의 춤을 통해 로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듯 하다. 유니콘도 뿔을 잃고 보통의 말이 되듯이. 짐은 로라에게 키스한다. 하지만 짐은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로라와 아만다에게 밝히고는 황급히 떠나버린다. 부러진 유니콘의 뿔은 깨어져버린 꿈이다.

짐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알게된 아만다는 화를 내며 버림받은 엄마와 직장도 없고 절름발이인 누이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톰에게 소리친다. 톰은 아만다와 로라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떠났던 길을 따라 집을 떠난다.

전기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촛불을 붙들고 있는 로라에게 톰은 이제 그만 촛불은 끄라고 부탁하며 연극은 마친다.

연극의 마지막에 결국 이 세 가족들의 꿈이 얼마나 현실에서 나약하며 유리 동물들과 같이 쉽게 깨지는지 보여준다. 로라의 꿈은 유니콘의 뿔이 부서지며 사라진며 과거의 화려함으로 치장된 현실을 살아가는 아만다 또한 결국 자신의 비참함을 고백하게 된다. 톰은 언제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미래를 꿈꾸지만 자신이 버리고 떠난 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이 연극의 연기 기법은 상당히 독특하다. 마리오네트라는 표현 양식으로 등장 인물 모두가 꼭두각시 인형과 같이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연기한다. 이러한 연기는 톰의 가족들이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무언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잘 표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감정 표현이 많은 인물들의 표정은 이와 같은 연기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인형과 같이 보다 메마르고 건조한 표정 연기였다면 더욱 비극성이 강조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이 생각이다. 또한 짐은 외부의 정상적인 인물로서 나타남에도 비슷한 연기를 하는 것이나 특히 희화화된 모습은 극에 잘 조화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보인다.

독특한 연출 방식이 주는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운 점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비록 배우들의 재치로 연기의 연속성이나 극의 끊김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 무대 배경이 자꾸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종종 음향 효과에 배우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대체적으로 연극에 몰입감이 떨어져 아쉬운 감이 있다.

사실 이 연극을 보기 몇일 전 원작을 주문했다. 연극을 본 후에 원작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심에서..
일단은 내 책장을 장식하고 있겠지만..

2005/04/22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John Gray, Ph.D.
HarperCollins
ISBN: 006057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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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과 같이 대화를 하다보면 "으..역시 여자는 이해할 수 없어.."라며 어느새 혼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는 나를 종종 발견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세계인구의 절반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별 사전 정보가 없어 남녀간의 심리적인 차이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학문적인 책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있어 실직적인 도움을 줄만한 여러 조언을 모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작가인 Jonh Gray는 다년간에 걸친 여러 사람들과의 상담과 강연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토대로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해 주고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
우선 작가는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서로 다른 존재이며 이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주거나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Once upon a time Martians and Venusians met, fell in love, and had happy relationships together because they respected and accepted their differences. Then they came to Earth and amnesia set in: they forgot they were from different planets.
Without the awareness that we are supposed to be different, men and women are at odds with each other.

이에 남녀간의 차이를 인식을 돕기 위해 비교적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을 제시한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화성인과 금성인의 경우로 비유하여 이해를 돕는다. 우선 남자와 여자는 각각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의 차이점을 보인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남자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하는 반면에 여자는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서로간의 관계에 있어도 남자는 Rubber band와 같이 주기적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하며 여자는 Wave와 같이 감정적인 기복을 겪는다. 별 의미 없는 말도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받여들여 질 수 있는지 'Martian/Venusian Phrase Dictionary'를 이용해 설명해 주기도 한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Good intenions are not enough) 작가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사례를 통해 조언을 준다. 특히 남자에게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없이 여자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것을 충고하고 여자들에게는 자신의 감정과 요구사항을 전할 때 남자를 바꾸려고 하거나 통제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을 것을 충고한다.
The success of a relationship is solely dependent on two factors: a man's ability to listen lovingly and respectfully to a woman's feelings, and a woman's ability to share her feelings in a loving and respectful way.

작가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나름대로 개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작가가 남자인데서 약간의 한계점을 갖는다고 보인다. 남자들은 이러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이렇게 대해주어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내용들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할 것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약간 받는다. 게다가 남자들에게 주는 조언들에서는 비록 같은 남자로서 공감을 주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서술들은 종종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고 규정하는 식으로 받아들일 우려가 적잖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학문적인 사실로 여기거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말그대로 상담자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아 보인다.

2005/04/19

HEAD Liquidmetal Radical OS


HEAD Liquidmetal Radical OS

자 이것이 궁극의 테니스 라켓 Liquidmetal Radical OS!!
Andre Agassi가 사용했다고 한다.

집앞 서울고에서 테니스를 배운지 한 달이 되었다.
그 동안 Wilson Hammer 6.2를 빌려서 사용하다가 드디어 내 라켓을 장만했다.

좋은 라켓을 드니 자연히 잘 쳐지리라고 기대했지만 역시 초보의 한계가..
의천검만 든다고 갑자기 강호의 지존이 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레슨을 조금 받다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새 라켓을 별로 휘드르지도 못했다.
처음 테니스 코트에 갔을 때도 비가 왔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테니스를 치시는 것을 보러 코트에 자주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를 생각해보면 테니스라기 보다는 연식 정구가 더 맞는 말이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집안 곳곳에 트로피들이 있었고 테니스 라켓도 상당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별로 필요없어 보이고 짐만 되는 트로피들을 어머니께서 이사하면서 전부 버리신 것이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는 어머니를 나무라시곤 한다. 아버지가 테니스를 치셨다는 증거는 모두 사라지고 오래된 사진첩이나 먼지 쌓인 기억만이 남아있는 전부이다.

지난달부터 내가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대화 중에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께서 정구를 치시던 때는 정구가 꽤나 유행이었다고 한다. 물론 테니스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테니스공 값이 만만치 않은 터라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눈총 꽤나 받았더랜다. 그에 반해 연식구는 하나 사면 한달은 족해 칠 수 있으니 꽤 저렴한 축에 속했다.

매일 새볔같이 일어나 연습하시고 주말에도 항상 치셨단다. 게다가 크건 작건 시합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꼭 출전 신청을 하셨다고 한다. 수많은 트로피들을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제법 잘 치는 축에 속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내 짐작을 넘어서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창원 대표로 전국체전에도 참가하신 적이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사라진 트로피들을 아쉬워 하신다.

오랜만에 테니스 라켓을 손에 쥐어보시니 감회가 새로우신 모양이다.
"줄이 끊어지기도 하고 많이 치면 채가 부러지기도 했지.."
"그때는 우드로 된 채도 있고 새로 그라파이트로 된 채도 있었지. 이것은 뭔가? 음..티타늄.. 가볍고 좋구나."
"연식을 할 때는 이렇게 잡고 이렇게 팍 쳤었지.."
하시며 채를 살짝 휘둘러 보시기도 한다.
손목에 스포츠 밴드를 하면 더 잘 된다고 조언도 해주신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장만한 테니스 라켓..
자기 채를 가져야 테니스에 애착이 생겨서 실력이 빨리 는다고 하는데..
이제 좀 늘겠지?

2005/04/10

안녕, 모스크바 (Stars in the Morning Sky)


안녕, 모스크바 (Stars in the Morning Sky)
출연: 이원희, 신서진, 백향수, 김선영, 신지훈, 최홍일, 정의갑, 이도엽
원작: 알렉산드르 갈린
번역&연출: 김태훈
예술감독: 차태호
조연출: 박병수
연출부: 전은미, 정선화, 노은정
무대미술: 유영봉
의상: 장혜숙
조명: 신호
무대감독: 김은실
주최: 극단 지구연극 연구소(GTI)
기획: 문화아이콘
공연장소: 아룽구지 소극장

20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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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연극 연구소의 작품은 이것으로 두 번째로 접한다. 2001년 국립극장에서 안톤 체홉 페스티벌에서 <바냐 아저씨>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라 그런지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일방적인 시선으로 비춰지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 좋게 느껴진다. 특히 조명을 받으며 대사를 읊는 배우 외에 주변에 있는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자그마한 재미를 준다.

<안녕, 모스크바>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이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소련 정부는 모스크바 올림픽이 시작하기 직전 거리의 부랑자나 매춘부 등을 모스크바 근교로 격리시켜 외국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운 후 이를 실행에 옮긴다. 여기 성화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조금 떨어진 임시 수용소에 매춘부와 정신이상자, 알코올 중독자가 모여있다.

임시 수용소의 관리인 발렌찌나(발야)는 강한 여성을 표상하며 수용소의 사람들을 매정하리만큼 차갑게 대한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 밤중에 기찻길로 나가 고함과도 같은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바람기 많고 가정에 소홀한 남편을 정신병원에 보냈다. 아들 니꼴라이에 대해 집착에 가까우리 만큼 강한 사랑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들인 니꼴라이가 창녀인 마리아를 사랑해 아들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마리아를 미워한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 발렌찌나는 그저 감시의 대상이었던 수용소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발렌찌나의 아들인 니꼴라이는 경찰이지만 사랑하는 마리아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마리아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마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로 인해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한다. 성화가 지나가는 순간 초소를 비우고 다친 마리아를 위해 수용소에 돌아온다.

마리아는 기숙학교에서 남자와 동침했다는 누명으로 쫓겨나게 된다. 어머니조차 그녀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뺨을 친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아온 그녀는 모스크바에 있는 아기를 보러 가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만은 않다. 로라 대신 글라라를 따라 나서다 도중에 차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게 되고 부러진 다리를 이끌며 수용소로 돌아온다. 폭죽이 터지고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성화가 지나가는 순간 빨간 피를 흘리며 니꼴라이의 품에서 죽어간다.

안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슬픈 기억을 가지고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간다. 신앙심이 깊은 그녀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와주려 애쓰지만 아무런 힘이 없기에 사람들의 고함에, 혹은 술을 얻기 위해 결국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다.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등장 인물간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려 때로는 과장된 대사와 몸짓으로 연기하며 연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라는 언제나 거짓으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감추고 싶어한다. 화재를 우려하는 발렌찌나의 눈을 피해 수용소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다. 항구를 전전하는 매춘부이지만 항상 자신을 배우라 소개하며 언젠가 서커스단의 공중 곡예사가 되기를 꿈꾼다. 수용소에서 만난 정신이상자 알렉산드르(샤샤)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알렉산드르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이지만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수용소에서 로라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자신이 구름 위를 걷고 있다고 믿는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누가 아버지인지 모를 마리아의 아이가 신의 아이라는 해석을 이끌어 낸다.

글라라는 전형적인 거리의 여자로 거친 말을 서슴없이 하고 술에 찌든 모습을 보여준다. 포주의 협박으로 로라를 모스크바로 데려가려고 찾아 왔지만 오히려 모스크바로 돌아갈 기회를 잃고 함께 수용소에 남게 된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추방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축배를 들고 성화가 지나가는 순간에는 임시 수용소의 철창 앞으로 뛰어나가 철창 밖에 사람들에 못지 않게 환호를 하며 기뻐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을 하며 아픔을 느끼며 꿈을 꾸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이 아닌 우리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이십여 년 전의 이야기, 남의 나라 이야기인가. 바로 이 땅에서 같은 일이 최근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시 미관과 환경 정화를 이유로 수많은 빈민촌들이 뚜렷한 대책도 없이 강제 철거 되었고 가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 대책으로 거리 노점상 철거, 노숙자 강제 수용 등이 추진되었다. 이 사회에서 약자들은 사회로부터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귀찮은 존재로 취급 당한다. 주류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똑같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기에 이들을 보호하고 이런 소외된 계층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그냥 사라져 주기를 더 바라는지도 모른다.

주류 사회와 소외 계층간의 연결고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가느다란 실과 같다. 그래서 경찰인 니꼴라이와 창녀인 마리아의 사랑은 언제나 위태위태해 보이고 불안정해 보인다. 또한 소외 계층간의 연결 또한 로라와 알렉산드르의 관계가 보여주듯이 외부의 영향에 쉽게 깨어져버리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성서 속의 마리아는 신의 아이를 낳고 성가족을 이루며 널리 추앙받지만 창녀인 마리아는 빨간 피로 치마를 적시며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죽어간다.

하지만 연극은 작고 희미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연극의 마지막에 색종이가 뿌려지고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이쪽 세상과 단절된 높은 철창 담 저편에서도 수용소 사람들은 이 세상을 원망하거나 절망하기 보다는 손을 흔들며 같이 환호를 하며 함께 축제에 동참한다. 발렌치아는 종국에 니꼴라이와 마리아의 사랑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성화가 지나가는 것을 좁은 창 틈이 아니라 넓은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수용소의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성화는 철창 밖의 사람이나 안의 사람이나 모두에게 희망인 것이다. 하늘의 별이나 음악에 있어 철창은 무의미 한 것처럼.

연극의 원제인 <Stars in the Morning Sky>는 새벽녘의 희미한 별빛을 말한다. 연극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그 별을 노래한다. 비록 내일이면 이 작은 불빛은 사라지지만 내일이 오기 위해서는 이들이 있어야 하며 이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며 내일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올림픽이 여름에 개최되는 것을 감안하면 연극의 시간적 배경 또한 여름일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 배우들의 의상은 여름 옷이라기 보다는 모두 무거워 보이는 겨울 옷차림이다. 특히 니꼴라이의 짙은 카키색의 경찰 제복은 차라리 겨울철의 군복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작은 오류가 눈의 거슬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두어 보이는 연극 속 현실의 상황과 잘 어루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