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24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출연: 이승연(아만다), 김기민(톰), 조선주(로라), 한창완(짐)
연출: 송윤석
조연출: 최교익
제작감독: 김두영
예술감독: 김성빈
드라마투르그: 현재원
무대: 안치윤
의상: 라키
분장: 전인미, 김선희
주최: 누다연극인모임
제작: 극단 예휘
공연장소: 연우소극장

200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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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은 Tennessee Williams 원작의 희곡이다. Tennessee Williams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작가이기도 하다.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꼭 봐야 하는 연극 중 하나라 생각해 왔기에 친구와 함께 대학로를 찾았다.

배경은 대공황 시대 미국의 한 가정이다. 무대는 극히 간결하다. 실내임을 알릴 수 있을 정도의 약간의 벽과 낡은 의자 몇 개. 그리고 실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유리조각 더미. 소품 또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음향 효과와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에 의존한다.

극이 시작하기 전 아만다는 무대 가운데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불편해 보이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적어도 십 여분 이상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몰락한 아일랜드의 귀족출신이다. 아만다는 귀족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들인 톰과 딸인 로라에게 항상 귀족적인 품위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하층민의 처지에 있지만 항상 사실인지 알 길이 없는 영화로운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있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톰이 행여 술에 빠져 부랑자나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로라가 착실한 청년과 하루빨리 맺어지기를 고대하며 톰에게 건실한 청년을 로라에게 소개할 것을 부탁한다.

연극은 톰의 나래이션로 시작하며 진행된다. 톰은 창고에서 일하며 밤마다 영화를 보러간다고 나가서는 술에 취에 집에 들어온다. 일하는 종종 화장실에 숨어 몰래 시를 쓰는 그에게 친구인 짐은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을 붙인다. 톰은 희망없는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며 언젠가 선원이 되어 대양으로 나갈 것을 계획한다. 어느 날 어머니의 부탁에 따라 저녁 식사에 짐을 초대한다. 누이인 로라를 무척 아끼고 걱정한다.

절름발이인 로라는 지극히 수줍어하며 소극적이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실업학교에서 타자 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고 직장도 없다. 로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언제나 자신이 수집하는 유리 동물들과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남긴 축음기만을 만지작 거리며 살아간다. 집에서 수없이 접시같은 것을 깨뜨는 것은 그녀가 현실의 벽을 넘는 것이 요원함을 보여준다.

짐은 톰과 같이 창고에서 일하는 멋지고 건실한 젊은 청년이다. 그는 연극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연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짐의 등장 이전과 이후. 짐의 등장 이전에는 주로 톰과 아만다의 갈등 관계가 부각된다. 귀족적인 품위를 강요하는 어머니 아만다와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아들 톰. 이들은 비참한 현실의 상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외면한다. 아만다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로라는 자신의 유리 동물원에 갖혀 있으며 톰은 시를 쓰며 자유로운 미래를 꿈꾼다.

짐의 등장 이후는 짐과 로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짐에게 로라는 자신의 유리 동물 중 유니콘을 가장 아낀다고 말한다. 유니콘은 순수함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현실에는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로라 또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실수로 유니콘의 뿔을 부러뜨리지만 로라는 짐을 용서한다. 짐과의 대화를 통해, 짐과의 춤을 통해 로라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듯 하다. 유니콘도 뿔을 잃고 보통의 말이 되듯이. 짐은 로라에게 키스한다. 하지만 짐은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로라와 아만다에게 밝히고는 황급히 떠나버린다. 부러진 유니콘의 뿔은 깨어져버린 꿈이다.

짐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알게된 아만다는 화를 내며 버림받은 엄마와 직장도 없고 절름발이인 누이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톰에게 소리친다. 톰은 아만다와 로라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떠났던 길을 따라 집을 떠난다.

전기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촛불을 붙들고 있는 로라에게 톰은 이제 그만 촛불은 끄라고 부탁하며 연극은 마친다.

연극의 마지막에 결국 이 세 가족들의 꿈이 얼마나 현실에서 나약하며 유리 동물들과 같이 쉽게 깨지는지 보여준다. 로라의 꿈은 유니콘의 뿔이 부서지며 사라진며 과거의 화려함으로 치장된 현실을 살아가는 아만다 또한 결국 자신의 비참함을 고백하게 된다. 톰은 언제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미래를 꿈꾸지만 자신이 버리고 떠난 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이 연극의 연기 기법은 상당히 독특하다. 마리오네트라는 표현 양식으로 등장 인물 모두가 꼭두각시 인형과 같이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연기한다. 이러한 연기는 톰의 가족들이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무언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잘 표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감정 표현이 많은 인물들의 표정은 이와 같은 연기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인형과 같이 보다 메마르고 건조한 표정 연기였다면 더욱 비극성이 강조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이 생각이다. 또한 짐은 외부의 정상적인 인물로서 나타남에도 비슷한 연기를 하는 것이나 특히 희화화된 모습은 극에 잘 조화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보인다.

독특한 연출 방식이 주는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운 점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비록 배우들의 재치로 연기의 연속성이나 극의 끊김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 무대 배경이 자꾸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종종 음향 효과에 배우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대체적으로 연극에 몰입감이 떨어져 아쉬운 감이 있다.

사실 이 연극을 보기 몇일 전 원작을 주문했다. 연극을 본 후에 원작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심에서..
일단은 내 책장을 장식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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